미래도시의 사회혁신, 시민참여가 핵심이다.

- SDIF 1차 사전포럼 이건표 홍콩폴리텍대학교 학장의 강연에 대한 소고 -


 지난 2022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디자인정책과에서 주최하는 서울 디자인 국제포럼(SDIF)의 1차 사전포럼이 온라인으로 열렸다. 그날 강연자로 나선 3명의 연사 중 이건표 홍콩폴리텍대학교 학장은 “파괴적 패러다임 변화 시대의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미래사회 변화의 핵심을 짚으며 디자인의 역할과 비전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디자인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이자, 대학에서 사회혁신 교육 기관장을 맡고 있는 나에게는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강연이었다. 이 글을 통해 강연에서 제시된 거대 담론이 실제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으며 미래도시의 시민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강연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디자인에 있어서 게임의 법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디자인 패러다임이 변화할 때의 특징을 ‘디자인 핵심역량의 민주화’, ‘새로운 디자인 문제’, ‘새로운 질문’의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한 부분이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풀어내 보자면 다음과 같다.


디자인 핵심역량의 민주화 : 

 기술의 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디자인 대상과 방법은 계속해서 변화해 왔다. 물리적 도구와 환경이 주요 디자인 대상이던 시대에는 대대로 전수받은 솜씨와 그리기가 중요한 방법이었지만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과 시스템이 그 대상이 되면서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사고와 컴퓨터를 활용한 도구가 중요해졌으며, 최근에는 플랫폼과 생태계가 디자인 대상이 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공동창작과 같은 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이제는 디자인의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사용자의 편익뿐만이 아니라 복잡한 사회시스템 속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이를 개선하는 것이 디자인의 목표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공을 위한 디자인의 역할과 디자인의 사회적 책무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디자인적 접근을 일반적으로 공공디자인(Public Design) 또는 서비스디자인(Service Design)이라고 말하는데, 최근에는 주로 사회적 가치실현을 위한 사회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이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영역에서 디자인의 역할은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디자인을 통해 가치를 공유하거나 사회에 기여하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이제는 디자인이 특정한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편적인 문제해결 방법론으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즉, 디자인의 전문성 또는 핵심역량이 민주화됨으로써 디자인사고(Design Thinking)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여 디자인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 앞으로는 의도적으로 사용자가 스스로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둠으로써 사용자가 자신의 생활 환경(Context)과 행동에 맞게끔 창의적으로 재가공하거나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용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디자인(Empowering Design)이 중요해질 것이다.


 필자는 서울여자대학교의 사회적 가치실현을 위한 사회혁신 교육 특성화 전담 기구인 SI(Social Innovation) 교육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는데, 다양한 학과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비교과 프로그램인 민·관·학 협력 프로젝트를 3년째 운영해 오고 있다. 한국해비타트와 포스코건설, 그리고 지자체가 참여하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서 첫해는 의정부시를 시작으로 전주시, 부산시와 협력을 하였으며, 참여 학교도 전북대학교, 부산대학교, 한양대학교, 고려대학교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참여 학생들이 낙후된 지역의 도시 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를 같이 발굴하고 해결안을 도출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한국해비타트와 지자체는 운영과 행정적인 지원을 담당하고, 기업은 재정적 지원을 담당한다. 프로젝트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혁신 방법론으로 디자인사고를 활용하는데, 이는 디자인 핵심역량의 민주화를 통한 사회혁신 디자인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2022년부터는 서울여자대학교 내에 민·관·학이 함께 협력하는 교육 공동체인 도시혁신스쿨을 설치하고 지속적인 사회혁신 과제를 수행할 계획이다.


[시민이 참여하는 민·관·학 협력 지역사회혁신 프로젝트 사례]


새로운 디자인 문제 :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술의 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디자인해야 할 대상과 방법이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해결해야 할 디자인 문제도 변화하였는데, 디자인을 통해 도구의 조형을 만들어내는 시대에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디자인 조형을 만드는 시대(Computer for Design)로, 다시 정보기기를 위한 상호작용을 디자인하는(Design for Computer) 시대로 변화해왔으며, 현재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디자인 문제해결의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은 어떤 접근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고 무엇을 디자인해야 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서 디자인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AI for Design)을 넘어서 디자인이 공공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Design for AI)가 중요해진 것이다. 즉, 어떻게(How) 디자인하는 것이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에 앞서서 새로운 디자인 문제는 무엇(What)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020년 초에 정부는 공공데이터인 마스크 판매현황 데이터를 민간에 전격 공개하였다. 그 이후 이 데이터를 이용해 마스크 재고 현황을 알리는 다양한 민간 서비스가 개발되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은 마스크앱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 등록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였고, 다수의 개인 개발자 또는 민간 기업은 정부의 공개된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공익적 목적의 마스크앱을 개발하여 국민에게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코로나닥터, 코로나맵 등의 유용한 서비스도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민간에서 개발한 서비스이다.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서 사회문제 해결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울시는 2021년 11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비대면 소통 채널로 급부상한 ‘메타버스 플랫폼’을 전국 지자체 최초로 구축하고 시정 전반에 도입해 신개념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체 플랫폼인 ‘메타버스 서울’을 올해 말까지 구축하고 3단계에 걸쳐 경제·문화·관광·교육·민원 등 시정 전 분야의 행정서비스에 메타버스 생태계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마스크앱/서울관광재단, 버추얼 서울 플레이그라운드/메타버스로 구현된 DDP]



 이러한 사례는 데이터와 인공지능, 그리고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공공서비스가 새로운 도시기능으로 변화함에 따라 해결해야 할 디자인 문제 또한 전혀 새로운 접근이 필요해질 것임을 보여준다. 기존의 대면 공공서비스가 비대면 공공서비스 플랫폼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가와 시민 전 계층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포용 도시의 비전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가 새로운 디자인 문제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새로운 질문 : 

 2019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 상하이의 한 초등학교에서 적용한 뇌파 측정을 통한 인공지능 활용 교실 사례를 보도했는데, 그 당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이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인공지능 센서가 부착된 헤드밴드를 착용한 채로 수업을 받게 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뇌파를 수집하여 수업집중도를 분석하고 이 결과를 교사와 학부모에게 전송한다는 것이다. 인권침해 논란과는 별개로, 이러한 기술 기반의 새로운 사용자경험을 디자인할 때 좀 더 편리한 인터페이스나 사용성을 고민하는 것이 과연 중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보다는 왜 이러한 인공지능기술을 교육에 활용해야 하는가(Why)를 먼저 고민하고, 새로운 질문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많은 석학이 ‘다원성을 위한 디자인’ 또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디자인’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한동안 정보화와 디지털경제로 대변되는 흐름 속에서 중요한 디자인 사상으로 활용되어왔던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 우리 인류가 포함된 전체 ‘생태계’를 위한 디자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개발된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바람직한 비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질문을 통해 현재에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포스코는 ‘기업시민’이라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2019년 포스코 기업시민 헌장을 공표하고 임직원이 기업시민헌장을 내재화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시민이란 사회구성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체로서의 기업을 의미한다. 포스코는 기업시민 5대 브랜드로 Green(함께 환경을 지키는), Together(함께 거래하고 싶은), Challenge(함께 성장하고 싶은), Life(함께 미래를 만드는), Community(지역사회와 함께하는)로 정의하고 탄소중립, 동반성장, 벤처 조성, 미래세대 지원, 지역사회와의 공존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SK그룹, GS그룹 등 거의 대부분 기업집단이 과거의 이윤 창출과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기존의 목적을 넘어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하는 것을 추구하는 ESG(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ance:지배구조) 경영을 표방하고 있다. 기술을 기반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오던 기업이 미래의 바람직한 비전과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질문을 제시하고 이를 위한 기술개발 및 경영활동을 통해 시민사회와 함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 가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회혁신은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긍정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시민사회의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디자인사고는 이러한 사회혁신을 위한 방법론으로서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사회 구성원의 마인드와 태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직까지 디자인이 물리적인 대상에 한정되어 있거나 보여주기식의 산출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미래도시의 시민사회가 누리고 공유할 수 있는 가치 있는 경험을 창출하는 전략이자 도구로서 디자인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강연의 핵심 주제인 디자인 핵심역량의 민주화, 새로운 디자인 문제,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사회혁신과 관련된 사례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강연을 듣고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현시점에서 사회혁신을 위해 필요한 노력의 방향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는데, 공공서비스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그 대상은 물질적인 하드웨어 중심에서 경험적인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정책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시혜 중심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시민의 참여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잘 이루어진다면 미래도시의 시민들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혁신의 참여자로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실천을 통해 서로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경험을 향유하고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본 기고글은 서울국제디자인 1차 사전포럼(3.31.) 발표내용과 관련된 필자의 의견입니다. 


발표 | 이건표 (홍콩폴리텍대학교 학장)

글 | 박남춘 (서울여자대학교 SI교육센터 센터장)


발표 요약글 바로가기: https://sdif.org/html/ko/view.php?no=110 

카테고리 관련 컨텐츠
해시태그 관련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