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서울이라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당신에게 서울이라는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포틀랜드, 뉴욕 혹은 베를린
개인적으로 포틀랜드를 가본적은 없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욜로 라이프’, ’킨포크 라이프’라 칭하는 라이프스타일이 대두되고, 그 대표적인 도시로 떠오른 곳 중의 하나가 포틀랜드였다. 포틀랜드는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고 개선하고 바꾸는 도시가 아니라 자유로운 사고와 삶이 인정받고 조금은 느리지만 여유로운 감성이 넘쳐흐르는 곳으로 인지되었다. 물론 이는 성공한 도시브랜딩의 결과다. 최근 포틀랜드를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받은 포틀랜드 마스크를 소중히 간직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디자인’만큼 많이 언급되는 키워드는 ‘브랜딩’이다. 브랜딩은 제품부터 기업, 개개인에서 도시, 국가에까지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범용적이고 또 중요한 화두다. 이는 무엇을 단순히 경험하고 소비하는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며 내가 소비하거나 경험하는 대상은 무엇이고 또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앞서 언급한 포틀랜드의 사례는 작은 경험일지라도 강력하다. 뉴욕이나 베를린, 밀라노, 다보스, 런던 등, 우리가 특정 도시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어떤 이미지나 브랜드 혹은 그곳의 대표적인 스팟을 떠올리는 경험은 모두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도시 브랜딩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지난 3월 31일 줌을 통해 열린 서울디자인국제포럼이 짚어낸 디자인 패러다임으로 ‘도시브랜드’를 선택한 건 그런 점에서 시의적절한 선택이었다. ‘디자인 동향과 정책방향’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포럼 중 특히 ‘도시브랜드 경험디자인의 가치’(연사: 퍼셉션 최소현 대표)는 ‘브랜딩’이 범람하는 지금, 우리에게 도시브랜드의 의미와 맥락을 짚어주며 ‘도시브랜딩’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했다.
포틀랜드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
도시브랜딩은 무엇으로 완성되나
브랜딩은 결국 경험으로의 치환이다. 시각, 후각, 미각을 포함한 모든 공감각과 같은 여러 맥락의 결합이다. 여기서 맥락이란 쉬이 정의하기는 어렵다. 베를린이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도시로 자리매김한건 단순히 ‘Be Berlin’이라는 슬로건의 결과도 아니며 우리가 뉴욕을 가보고 싶은 이유가 단지 ‘아이 러브 뉴욕’이라는 상징적인 로고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살고 싶다’ 혹은 ‘가보고 싶다’는 욕구는 매우 복합적인 요소들의 결과다. 도시브랜딩의 개념이 기업브랜딩의 원리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이론적 상황을 생각하면 기업에서 칭하는 ‘소비자’가 도시에서는 ‘거주자’’방문자’’관광객’등으로 훨씬 다양해진다. 그리고 도시브랜딩에는 이들 대상이 경험하는 모든 경우의 수, 상호작용이 전제된다. 여기에는 도시의 자연, 역사, 사람들과의 관계를 비롯해 도시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그러기에 정해진 답은 없으며 도시브랜딩은 마치 유기체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도시브랜딩을 결정하는 요소
‘도시브랜딩’이라는 말이 좀 거창하고 어렵다고 느낀다면 가까이 국내의 사례를 살펴볼 수도 있다. 강릉은 커피로, 경주는 역사와 유적지로, 제주는 자연적 특성으로 포지셔닝 되어 있다. 기존의 자산을 활용하거나, 새로운 키워드, 콘텐츠를 내세운 다양한 경우다. 이외에도 기업이나 브랜드, 건축물로 브랜딩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일본 교토는 리조트 그룹 호시노가 만든 호시노야 호텔로 더욱 유명해졌다. 호텔을 지역 커뮤니티와 연계하며 현지인과 같은 체험, 휴식과 자연을 즐기는 콘셉트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이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해 마치 우리가 성지순례지를 가거나 명상을 위해 인도를 찾는 것과 같은 강력한 정체성이 되었다. 한편 독일의 작은 소도시 함부르크는 2017년, 엘프 필하모닉 홀의 개관으로 전세계 음악인 뿐만 아니라 관람객,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엘프 필하모닉 홀은 ‘테이트모던’의 건축으로도 알려진 ‘헤르조그&드뫼롱’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사용자를 고려한 널찍한 동선과 음향 설계, 음악을 들으러 가지 않더라도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고, 함부르크 시에서는 이를 도시의 랜드마크로 활용하는 동시에 음악과 예술의 성지로서 함부르크를 정립하고 있다.
왼쪽부터 제주, 엘프 필하모닉 홀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
내가 살고 싶은, 가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하여
그렇다면 도시브랜딩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이는 단순한 정책이나 시각적인 변화만이 답이 아니다. 가까운 예로 을지로가 창작자들의 집합소가 된 것은 브랜딩의 결과라기보다는 과거 제조 산업의 메카였던 을지로의 역사, 지역적 접근성, 구축 건물이 늘어선 지역의 독특한 색깔 등에 이끌려 을지로로 창작자들이 모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애틀은 원래 비가 많이 내리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커피 또한 연상할 수 있는 이유는 전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스타벅스가 탄생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풍부한 문화 인프라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걸출한 행사가 30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한 몫을 한다. 이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직·간접적인 경험치’를 제공한다.
위의 간략한 사례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도시브랜딩을 위해서는 사람, 지역, 역사, 브랜드 혹은 그들의 아이템 등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득한 시간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 순간, 단기간에 브랜딩을 만들어내고 이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거기에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그 안에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쌓아갈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기에 이를 정책이나 몇 가지의 프로그램, 기념물과 같은 것으로만 단편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부산국제영화제, 을지로 예술축제 '을지판타지아'
(이미지 출처: https://unsplash.com/, https://www.caci.or.kr/caci/main/contents.do?menuNo=200137)
도시브랜딩을 위한 경험디자인
이번 포럼의 발표 내용인 ‘경험디자인’의 중요성은 그래서 더욱 강조된다. 단어 자체로 자칫 ‘디자인’에 한정된 범위로 오해할 수 있지만 경험디자인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과 ‘협력’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 변수에는 사회 변화와 문제, 트렌드, 자연 요소, 거주자와 유입자들, 이들의 생활 패턴 등 다양한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여기에 좀 더 포괄적인 접근과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거친다면 분명 성숙한 도시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으로 ‘서울’을 도시브랜딩에 대한 바른 접근과 프로세스로 바라보자면 우리는 어떤 것을 시각화하고 눈에 띄게 만들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서는 안된다. 우선 서울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 정의, 명확한 목표 설정, 일관된 맥락의 경험 설계, 구성원을 비롯한 이해 관계자들의 관여 등 다양한 맥락을 연결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어느 도시처럼’,’어느 지역처럼’이라는 전제에 앞서 서울이 가진 자산, 서울 시민, 서울의 역사, 랜드마크들 등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싶은가’ 혹은 ’가고 싶은 도시는 어디인가’, 그리고 ‘누군가를 어떻게 환대하고 싶은가’로 귀결된다. 누군가가 서울에 살고 싶고, 방문하고 싶다면 이는 결국은 지속적으로 도시가 보여주고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 건물 혹은 음식, 축제나 이벤트와 같은 다양한 소스에서 발견하고 확장시킬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브랜딩의 시작이다. 결국 브랜딩의 궁극적 목표는 존재와 행위의 의미, 일관된 가치 전달, 이를 통한 경험과 애정의 기제를 발견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유기체로서의 도시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가 특히 산업과 국가 전반에서 최근 많이 사용되지만 도시브랜딩이야말로 ‘지속가능성’이 그 기본이자 목표라는 점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 지속가능성은 곧 살아있는 도시의 진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특히 ‘도시’는 그 생명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관계자와 연결망이 있기에 더욱 신중하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여기서의 접근은 도시브랜딩을 위한 ‘새로운’ 무언가를 말하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싶다. 최소현 대표는 포럼에서 발표 말미에 ‘성숙한 도시’를 만드는 ‘성숙한 디자인’의 필요를 역설하며 누구 한 명의 힘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디자인이 제안할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고 확장된 경험설계가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시민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공공기관은 다양한 연결과 단절을 잇는 역할을, 디자이너는 전문성 있는 소신 있는 제안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모두의 책임임을 강조한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 또한 필요하다. 도시브랜딩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부터 앞으로를 살아갈 세대를 위한 디자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를 위한 새로운 시작점부터 다시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렇다면 도시와 도시 브랜드는 어떻게 경험하게 만들까. 2022년 바로 이 시점에서 말이다. 여기에는 공공 공간과 시설물, 사이니지와 같은 시각적 요소 등 다양한 구성 요소가 필요하다. 또한 그 가치를 알고 느끼며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 또한 필요하다. ‘도시브랜드 경험디자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도시경쟁력을 견인하는 경험디자인의 중요성 인지, 최신 동향 분석, 그리고 경험디자인 기획을 위한 서울시의 노력 등도 중요하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는 그런 시작점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자산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는 곧 서울이라는 도시, 시민, 기관 그리고 디자이너가 이를 위해 유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발굴, 발견, 개발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발표 | 최소현 (퍼셉션 대표)
글 | 오상희 (前 월간 <디자인> 수석 기자)
사진 | 언스플래시, 중구문화재단 제공
* 본 기고글은 서울국제디자인 1차 사전포럼(3.31.) 발표내용과 관련된 필자의 의견입니다.
필자 소개
오상희
前 월간 <디자인> 수석 기자. 철학과 디자인을 전공하고, 신세계 S매거진, 서울문화사, TNS미디어 등에서 피처 기자로 일했다. 월간 <디자인>에서 수석 기자로 공간, 건축,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를 만들었다. 현재 IT, F&B, 친환경 패키지, 메타버스 관련 기업과 함께 브랜딩 작업과 콘텐츠 기획&제작을 하고 있으며 공간, 브랜딩 프로젝트 기획과 매니징 등을 진행하고 있다. 월간 <디자인>, 네이버 디자인판, 네이버 비즈니스판, 로우프레스, 빌리브, 포춘코리아 등 여러 매체에도 기고 중이다.
발표 요약글 바로가기: https://sdif.org/html/ko/view.php?no=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