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디자인, 그리고 미래
도시와 디자인, 그리고 미래
1999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살기 좋은 커뮤니티(Livable Community) 이니셔티브’를 주창하면서 도시의 경쟁력에서 삶의 질을 강조하였습니다. ‘살기 좋은’, 또는 ‘살고 싶은’ 도시는 모든 지방정부 또는 국민과 시민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정책의 우선 순위일 것이지만, 기존의 물리적 공간이라는 도시에서 물질화 된 삶을 대상으로 정책을 집행하던 것과 대비하여 ‘삶의 질’이라는 추상적이며 개개인의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는 개념으로서 정책의 아젠다를 설정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물리적 개념으로서 도시가 아닌 생활자로서 주민이 강조되고 이들의 집합으로서 커뮤니티를 이해하는 것이 도시에서 삶의 질을 논의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생활의 주체로서 주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계획하는 능동적인 참여자로서의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도시는 다양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이 거주하며 생활을 영위하는 삶의 공간(삶터)과 다양한 생산활동을 하는 일의 공간(일터),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쉼의 공간(쉼터)로 구분될 수 있는데 이러한 도시를 구성하는 공간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상호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살기 좋은’ 커뮤니티는 이러한 삶터, 일터, 쉼터에서 개별적이면서 집합적인 시민들의 행태를 바탕으로 어떻게 사회적 교류와 귀속감,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은 도시 디자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도시 디자인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도시들은 이러한 도시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여 왔습니다. 서울디자인국제포럼은 지속적으로 이러한 도시들의 노력을 발견하고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특히 유니버설디자인과 사회문제해결디자인 관점에서 일상, 놀이, 안전, 제도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성공사례와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수집하고 이를 통해 인사이트를 발견하려고 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부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도시들의 시도를 공유하였고, 이를 아카이브하고 소통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을 작년에 개설하였습니다. 이는 도시 디자인의 대상과 주체가 모두 시민이기때문에 끊임없이 시민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하는 필요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빅터 파파넥이(Victor Papnek, 1971)이 디자인을 ‘의미 있는 질서를 만들어 내려는 의식적인 노력(Design is the conscious effort to impose meaningful order)’이라고 주장한 것과 같이 디자인과정을 ‘문제인식과 문제정의, 문제해결’의 과정으로 많은 학자와 디자이너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앤서니 듄과 피오나 레비(Anthony Dunne & Fiona Raby, 2013)는 이러한 관점을 ‘디자인 고유의 낙관주의(Design’s inherent optimism)’라고 보고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은 해결이 어려운 도전들이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우리 스스로의 가치와 믿음, 태도, 행동을 변화하여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의 질’이라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도시 디자인이 지향하는 목표는 더욱 시민과 정책입안자의 가치와 믿음, 그리고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 위한 미세한 목표설정과 현실적인 미래예측이 필요합니다.
2022년 올해의 서울디자인국제포럼의 주제는 ‘디자인이 어떻게 미래를 풍요롭게 하는가’입니다. 이번 포럼은 세차례의 사전포럼을 통해 주제를 도출하고, 시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현실적 사례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다양한 연사들의 강연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싱가포르 쥬얼 창이 공항의 사례를 통해 여행객을 위한 새로운 공간 경험을 디자인한 사례에서부터, 시민의 행동분석을 기반으로 도시와 데이터 스토리를 연결하며 장기적인 비전에 대한 디자인 투자의 원칙을 적용한 사례, 생의 마지막 단계에 직면해 있는 부모와 자식을 위한 행복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디자인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안과 예측들로 풍성했던 포럼이었습니다.
이 책은 포럼의 내용을 정리하여 시민들에게 공유하고, 다시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포럼의 내용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유될 것이며 시민들의 의견은 다시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으로 반영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포럼을 준비하며 애써주신 많은 분들과 참여해 주신 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김현석
Papanek, Victor (1971). Design for the Real World: Human Ecology and Social Change, New York, Pantheon Books.
Dunne, A., & Raby, F. (2013). Speculative everything: design, fiction, and social dreaming. MIT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