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약자 관점의 도시환경 유니버설디자인: 이동 경험을 중심으로
- 관리자
발표자: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도시를 이용하는 이동 약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느끼는 베리어프리(barrier-free)와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체감은 상당히 다르다. 초고령화 사회와 유병장수의 시대를 앞둔 우리나라는 접근성에 대한 욕구가 증대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나 기존의 베리어프리(barrier-free) 패러다임의 한계를 넘어 도시 공간의 생활·이용 편의성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을 통해 그 간극을 메워 나가야 한다.
이동 약자의 도시생활
이동 약자들이 도시를 이용하는 방법은 비장애인의 경우와는 매우 다르다. 대표적으로 생활 인프라와 생활 반경의 차이가 있는데,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주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어댑티드 택시를 이용하거나 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따라서 생활 반경이 넓지 않고, 장거리 이동이 불가능하여 지역간 이동의 연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거주지를 벗어나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굉장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동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장애인 차별 금지법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된 지하철 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미국 장애인 법(ADA)과 같은 관련 법규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계단을 걷어내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거나 휠체어 사용자들이 오르내릴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휠체어 사용자들이 지하철을 타게 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은 셈이다.
또한, 정보 습득 방법에 있어 범용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 위치 표시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 이런 경우는 대개 공급자 중심의 안내 사인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실제 이동에 불편함이 있거나 언어의 장벽이 있는 여행자들, 관광 약자들이 그 불편함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이동 약자의 유니버설 디자인 경험
해외와 국내에서 직접 경험했던 사례를 통해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1.
독일에 방문했을 때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기차의 외관에는 자전거, 유모차, 휠체어의 픽토그램이 페인팅 되어 있었고, 열차 한 칸 전체가 누구나 함께 이용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유모차와 함께 앉아갈 수 있는 구조였고, 자전거를 휴대하는 경우 자전거를 옆에 두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일반 좌석은 휠체어와 같은 높이로 설계되어 있어 승객 모두가 시선 높이를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동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2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000m의 높은 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한국의 경우, 많은 전망대들이 안전의 이유로 울타리를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독일의 전망대에서는 아이들과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와 안전을 모두 고려해서 낮은 펜스와 네트를 설치해 둔 것을 볼 수 있었다. 굳이 사용자를 구분 지어 만들지 않고, 다수를 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다면 추가적인 비용 없이 모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수 있고 이것이 진정한 유니버설 디자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3
해외에서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본 것 중에 하나인 개폐형 자동문은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서 센서 가까이에 접근하면 문이 자동으로 개폐되도록 만들어졌다. 수동형인 경우, 필요 시 휠체어 마크가 있는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개폐가 되는데, 이 자동문은 단순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유모차를 사용하는 사람들, 어르신, 짐이 많은 사람도 사용이 용이하다. 한국에서는 좌우로 열리는 형태의 자동문이나 회전문 형태의 자동문이 보편적인데, 무장애 관광지 조성을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해외 사례와 같은 자동문의 설치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4
한국에서 진행된 ‘싸이의 흠뻑쇼’ 공연은 모든 관객이 일어선 채로 즐기는 스탠딩 공연의 형식이었다. 관객석에는 장애인 존이 별도로 마련되었다. 장애인 석을 따로 만든 것만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되었다고 하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공연의 특성상 안전을 담보하면서 휠체어를 탄 이동 약자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연을 함께 향유하기 위해 영역을 구분 지어 두었다는 범용성, 즉 유니버설적인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비장애인과 장애인 관람객들이 모두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었고, 스태프들은 안전 관리에 대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용자와 공급자 측면에서 통합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 및 운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5
우리가 여행객으로서 해외 도시를 찾을 때는 굉장히 많은 장애와 배리어(Barrier)를 갖는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도시 환경이 낯설며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이동하고 문화를 향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제공의 방법이다.
스위스의 경우는 SBB, CFF, FFS와 같은 스위스 연방 철도의 명칭을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일관성 있게 적용된 스위스 철도청의 심볼을 보고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고, 홍콩에서도 유사한 경험으로 삼지창 심볼을 통해 지상에서도 쉽게 지하철 역사의 위치와 방향을 인식할 수 있었다. 홍콩의 지하철은 계단이 없고, 노선과 방향에 대한 화살표 안내가 잘 되어있어 이동과 길 찾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는 관광객으로서 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뉴욕에서는 아주 단순한 표기 방법으로 휠체어 사용자들의 출구 이동경로를 안내하고 있었는데, 도보보행자와 같은 경로로 화살표에 따라 이동하다 보면 엘리베이터가 나오기도 하고, 어느 순간 경사로가 나타나기도 했다. 서울에서 겪었던 이동 약자로서의 어려움 중, 엘리베이터를 찾아서 지하철에 내려가는 것이 가장 어려웠는데, 뉴욕의 대중 교통에서는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표기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점 또한 인상깊었다.
배리어프리와 유니버설 디자인을 비교해본다면, 배리어프리는 조금 더 장애인 중심적인 관점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은 일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설계시점부터 모든 시민의 이용성을 고려하기에 새로운 변경 또는 재편, 조정 없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배리어프리에서 발생되는 간극들을 제거하여 누구나 함께 사용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단순히 환경적인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발전된 형태의 접근성을 만들어 가는 것을 목적으로 실제 계획 단계부터 포용을 고민해야 한다. 전문가와 건축가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무엇보다 실제 이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유니버설 디자인을 충분히 이해해야 더 많은 목소리를 내고 환경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 약자의 관점에서 현재 서울시의 도시 환경은 유니버설 디자인 환경이 크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다양한 환경 요인중, 우리가 빠르게 적용시켜 볼 수 있는 것은 안내시스템, 웨이 파인딩과 같은 부분이다. 안내 체계 구축에 있어 유니버설 디자인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고려되어 있다면, 현재 겪고 있는 불편함을 개선하는 지점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 단계에서 반영된 유니버설 디자인의 결과물은 수정과 개선의 여지 없이 지속가능성을 가지므로 도시 환경에 이를 적용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