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10%와 함께하는 디자인

"10%와 함께하는 디자인"
<경험의 격차 줄이기>
경험의 격차란, 설계자와 사용자가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경험을 지녔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간극을 말한다. 설계자가 사용자를 100% 이해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제품이라면 가능하겠지만, 다른 사람, 특히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에서는 설계자가 사용자 모두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경험의 격차가 적을수록 사용자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설계자가 사용자의 상황과 맥락을 잘 이해할수록 사용자가 진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험의 격차가 클수록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설계자의 목표는 경험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
<참여형 공공디자인 사례 – 센서리 백과 쉬운 미술관 안내서>
모든 가방 프로젝트는 ‘미술관 관람에서 감각의 제약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들자’는 제안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물의 형태나 구성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는 제로 베이스의 상태였다. 제안이 들어왔을 때 우리는 당사자를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래서 모든 가방의 디자인 과정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용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방법론을 적용했다. 또 빠른 프로토타이핑(prototyping)을 통해 가설 검증과 피드백을 반복하며 제품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어떻게 당사자들을 제작 과정에 포함할 것인가? 우리는 40여 명의 당사자와 비장애인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크게 세 흐름으로 구분해 진행했다. 첫 번째는 문제를 발견하고 정의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미술관 관람에서 당사자들이 어떤 제약을 경험하는지 함께 토의하며 이들의 입장에서 어떤 사안을 우선순위를 두고 해결해 나가야 할지 논의했다. 두 번째는 아이디어를 좁히는 동시에 발전시키는 자리였다. 이전 워크숍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우리 팀은 프로토타입을 제작했고, 참가자들과 이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어 최종적인 방향을 설정했다. 마지막 과정은 앞서 제시된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한 결과물을 검증하는 시연회였다. 참가자들은 하드 목업(hard mockup)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경험을 나누었고, 그 피드백을 종합했다. 이후 약 두 달간의 개선 과정을 거쳐 최종 제품이 완성됐다.
<모두를 위한 도시를 향해 : 10%와 함께 디자인하라>
왜 이런 참여형 디자인 프로세스를 택했을까. 보편적으로 논의되어 온 디자인이 대부분 결과물 중심이었다면 포용적 디자인은 과정 중심의 디자인이다. 과정 자체를 설계하는 것부터가 디자인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에 제약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함께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90%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90%)이라는 말이 있다. 90%를 위한 디자인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피라미드 구조다. Y축으로 했을 때 부를 기준으로 나누어진 명확한 서열이 존재한다. 상위 10%가 위에 있고 90%는 아래에 있는 구조다.
나는 이에 빗대어 ‘10%와 함께하는 디자인’을 제안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10%와 90%는 앞서 설명한 ‘90%를 위한 디자인’과 수치는 같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앞에서는 부를 기준으로 한 수직축을 사용했다면 여기서는 수평축을 사용한다. 여기서 10%란 감각의 스펙트럼을 수평축으로 놓았을 때 양 끝단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운데에 위치한 보편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양 극단에는 감각이 상대적으로 둔감하거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양손을 자유롭게 쓰지 않거나 시각과 청각에 제약이 있어 촉각이나 다른 감각으로 정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10%와 함께하는 디자인’이란 곧 이들을 설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이 공동 창작자(Co-Creator)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성이 생긴다. ‘10%와 함께하는 디자인’은 소수의 경험을 주변부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드는 보편적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울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김병수는 주식회사 미션잇 대표로, 장애인과 고연령층 등 그동안 소외되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연구한다. 그가 정의하는 디자인은 심미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신체적, 정신적 특성과 관계없이 누구나 ‘접근 가능한’ 디자인이다.
발행인이자 편집장으로 2021 년부터 장애인 관찰 조사와 전문가 인터뷰에 기반한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으며, 장애인 이동, 발달장애 아동의 놀이, 개발도상국 안전, 시니어의 디지털 접근성, 포용적 도서관의 요소들과 같은 현대 사회 이슈를 포용적 디자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는 2023년 서울 유니버설 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했다.
전시 작가로는 부산현대미술관 〈열 개의 눈〉(2025), 서울시립미술관 〈미술관에 갑니다〉(2025)에 참여했으며, 〈모두를 위한 놀이 Play for All〉(2021), 〈현대인의 포용적 언어를 위한 랭귀지 월〉(2023), 〈시각장애인의 학습과 성장〉(2024) 등의 전시를 총괄하고 디자인 했다.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 Social Entrepreneurship 을 공부했다.
저서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2025>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