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세션] 사람과 지구를 위한 도시 디자인: 비전에서 실행까지
기조연설
“사람과 지구를 위한 도시 디자인: 비전에서 실행까지”
헬레 소홀트 / GEHL CEO & 공동설립자
서론
오늘 저에게 서울에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가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이 주변을 산책했는데, 정말 따뜻한 환대를 받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살고 있는 코펜하겐에도 항상 비가 내리거든요.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늘 저는 사람을 위한, 그리고 사람과 함께 만드는 도시 디자인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즉, 도시 디자인을 중심으로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GEHL 소개
저희의 사명은 처음부터 ‘사람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평등과 건강,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28세 때 얀 겔 교수님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교수님은 64세로, 이미 학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고 계셨죠. 그렇게 함께 시작한 회사가 올해 5월 1일에 창립 2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얀 교수님은 2010년에 은퇴를 하셨으나, 제가 이끌고 있는 조직과 함께 여전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사람뿐 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즉, 도시 사이에 있는 모든 삶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잠깐 산책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 작은 투어를 통해서 서울이 훨씬 더 친환경과 생물의 다양성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저희는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습니다.
현재 코펜하겐, 뉴욕, 샌프란시스코에 사무소를 두고 있고, 오늘은 그중 일부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드리려 합니다. 아울러 도시화와 도시 디자인이 앞으로의 도시 계획에서 어떻게 지속가능한 접근과 연결될 수 있는지, 저희가 지향하는 철학에 대해서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아주 오래된 원칙으로부터 이어져 있습니다.
아마 몇몇 분은 얀 겔 교수님의 오래된 저서 ‘건물 사이의 삶(Life Between Buildings)’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1971년에 출판된 책이라 이제는 꽤 오래된 고전이 되었지만, 이 책에서 겔 교수님은 공공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공공공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공공의 삶’이란 결국 인간이 서로 어떻게 만나고, 관계를 맺고, 사회적 교류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도시 속에서 인간적인 차원, 즉 사람 규모의 도시를 만들어가는 핵심 가치로서 지금도 저희 작업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디자인과 도시디자인을 항상 ‘사용자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걷고, 무엇을 듣고, 어떤 냄새를 맡으며, 어떻게 환대를 느끼는지를 살펴보죠. 또한 단순히 물리적 경험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경험, 즉 어떤 규범이 존재하고 무엇이 소통되는지—그리고 정신적 경험까지 함께 고려합니다. 그 공간에서 사람들이 안전함을 느끼는지, 분위기는 어떤지, 무엇이 그곳을 매력적인 장소로 만드는지를 함께 탐구합니다.
저희는 과거에 사용하던 여러 방법론을 오늘날에는 디지털 도구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도구 들은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며, 여러분과 직원들이 직접 앱을 활용해 도시의 현장을 기록할 수 있도록 교육할 수도 있습니다. 서울 시민들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도로는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도심 속 보행 패턴은 어떤지 등을 직접 관찰하고 기록 하는 것이죠. 이렇게 얻은 인사이트는 향후 공공공간 계획을 수립하는 데 있어 전체 전략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도시 접근을 향해
지금까지는 저희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즉 방법론에 대한 간단한 소개였습니다. 이제 시야를 조금 더 넓혀서, 앞으로의 도시를 어떻게 설계하고 계획할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2050년이 되면 전 세계 인구의 약 7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서울의 경우 이미 국가 인구의 대다수가 이 도시에 집중되어 있죠. 그만큼 서울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고도 도시화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도시 디자인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큰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총체적인 접근’입니다. 이는 교통수단을 비롯해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서와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함께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총체적 접근은 전 세계 어디서나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입니다. 도시의 교통계획과 문화계획, 건강과 웰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도시의 지속가능하고 풍요로운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 프로젝트마다 부서 간 협업이 가능한 '크로스 디파트먼트(cross-depart- mental)' 형태의 프로젝트 그룹을 구성하려 노력합니다.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도시디자인 접근법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고, 사회적 성과와 공동의 목표를 만들어내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교류, 지역 공동체와 장소의 연결성, 건강과 삶의 질 등도 함께 고려합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이미 삶의 질을 측정하고, 시민을 경제적 기회와 연결하며, 지역사회 참여를 활성화해 민주적 도시 문화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도시 계획의 새로운 모델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이제 기존의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금의 방식은 분산된 인프라에 투자가 집중되는 구조로, 결국 전 세계적으로 자가용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공공간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이는 도시의 기능 저하와 장소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제는 그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연결된 인프라’를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서울처럼 대중교통이 촘촘히 연결된 도시가 그 좋은 예입니다. 정말 인상적이죠. 이런 연결성은 공공공간의 활력을 높이고, 이동성을 강화하며, 공간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서울은 이미 많은 부분에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건축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획일성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많은 도시들이 더 높은 안전성, 더 큰 편안함, 더 나은 기회를 추구하면서도, 그 결과로 매우 낮은 밀도의 환경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두 방향 모두에서 나타납니다. 두바이처럼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고밀도 도시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일부 지역처럼 건물이 낮고 넓게 퍼진 저밀도 도시도 있죠. 서울은 다행히 이런 저밀도 확산이 심하지 않지만, 세계 곳곳에서 이런 다양한 형태의 도시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가치 위에서 ‘기후에 부합하는 도시주의(Climate-Aligned Urbanism)’를 실현해야 합니다.
모든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도시, 건물과 도로, 보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간 중심의 거리’를 조성하는 것, 다양한 교통수단이 효율적으로 공존하는 거리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 출발점입니다.
이 사진은 코펜하겐의 사례인데, 저는 이런 공간을 ‘제3의 장소’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이 친구를 초대하고 함께 모여 도시를 공유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열린 장소입니다. 또 앞서 발제자가 말씀하셨듯, 주민이 직접 참여해 만들어가는 동네 디자인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책과 디자인 패러다임을 요구합니다. 저희 겔 스튜디오는, 기후 위기의 최악을 피하는 노력이야말로 도시의 가장 좋은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이러한 원칙들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기후 대응형 도시주의
그렇다면 ‘기후 대응형 도시주의(Climate-Aligned Urbanism)’는 무엇이 다를까요?
이 접근은 주민의 이동 방식, 소비 방식, 그리고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이 모든 요소가 사실상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입니다. 우리는 종종 건축물 자체에 내재된 배출량이나, 도시 관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만을 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주목하는 것은 ‘유도된 배출’이라 부르는 세 가지 영역입니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이 인간의 생활방식을 규정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따라 매일 지속가능하거나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합니다. 따라서 디자이너로서 우리는 행동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기회입니다.
먼저 ‘이동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서울은 이미 정말 잘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함께 걷거나 움직이는 능동적 이동의 시간을 더 늘려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지만, 핵심은 일상 속 편의시설과 서비스가 교통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을 때입니다. 이렇게 도시가 더 압축적이고 연결된 구조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사회적이고 활발한 방식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도시에서 ‘소비’하는 방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도시에서 ‘소비’의 방식을 새롭게 바꿔야 합니다. 중복된 소유를 줄이고, 도구나 자원, 공간을 함께 나누는 공유형 소비로 전환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 집의 일부 공간조차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겠죠. 서울이 주거비 부담 문제를 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지, 또 집의 어떤 부분을 타인과 나눌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를 더 ‘압축적’으로 만들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좁혀줍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시장이나 일상의 다양한 기회를 통해 연령과 성별에 상관없이 자원을 나누고 공동체를 더욱 효율적으로 형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버클리의 공공도서관에서는 책뿐 아니라 다양한 도구나 장비도 빌릴 수 있습니다. 즉,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대여하는 곳이 아니라, 일상에 필요한 도구를 함께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죠.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의 방식도 변화해야 합니다. 단일 용도로 경직되게 사용되는 건물은 줄이고, 사용자 간에 공유될 수 있으며, 유연하게 재구성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주거 공간이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변화일 수 있지만, 삶의 질을 생각하면 더 넓은 공간, 특히 외부로 이어지는 개방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을 서로 공유한다면, 오히려 더 높은 삶의 질과 풍요로운 공간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웃과 교류하고, 기존의 건물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하게 하는지에 대한 사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코펜하겐의 사례입니다. 197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 주민들이 건물 앞에 앉아 휴식할 수 있고, 반(半)개방형 발코니를 통해 하나의 ‘공유 거실’처럼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두 번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의 ‘바리오 31’입니다. 이곳은 주민들이 직접 지은 비공식 정착촌으로, 저희는 이 지역 안에 다양한 공공공간을 조성했습니다.
비록 집의 크기는 매우 작고 개인 공간이 부족하지만, 대신 주민들은 바깥에서 놀이터, 운동장, 거리, 광장 등 공동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사례는 코펜하겐의 학생 기숙사입니다. 내부는 공유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외부에는 원형의 공용 마당이 있어 학생들이 함께 어울리고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존의 인프라를 재활용하고 새롭게 갱신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서울이 이미 이 여정을 시작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사례는 2017년에 시작된 중국 상하이의 프로젝트입니다. 현재 약 480만 명의 시민이 이 공간을 이용할 수 있으며, 42km에 이르는 강변 구간이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 재탄생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걸으며,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고,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호주의 시드니 ‘조지 스트리트’입니다. 과거 자동차 중심이던 거리를 경전철과 보행자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거리로 전환하여, 항만에서 중앙역까지 사람들의 이동이 훨씬 편리하고 쾌적해졌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도시 또는 국가 차원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함께 설계 하기도 합니다. 상하이의 경우, 저희가 개발한 지침이 현재 전 지역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혹독한 환경과 열악한 거리 여건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 디자인 가이드 라인도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새로운 도시 수요에 맞춰 정책과 가이드라인을 바꾸는 것은 기후 적응으로 이어집니다.
다음은 이탈리아 볼로냐의 사례입니다. 역사적 유산이 많은 지역이지만, 기존의 도시 조직 안에 점진적으로 녹지를 확충하며 지속가능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서울의 여러 거리에서도 이미 보고 느낀 흐름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펜하겐 시청 광장과 티볼리 정원 앞 대로를 녹색 정원으로 재구성하는 최신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이처럼 인프라의 재설계는 도심에만 국한되지 않아야 합니다. 저소득 지역이든 부유한 지역이든, 도시 전역에 이러한 변화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공공간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며, 도시 전체가 연결된 공간망을 통해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동시에 도시의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뒷받침합니다.
사회적 인프라로의 전환
4~5년 전 코로나 시기에는, 지역 상점들이 문을 닫지 않고 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 소규모 거리 개방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영업시간과 인원 제한이 있었던 당시, 이러한 공간 실험이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공공공간의 프로그램과 디자인이 사람들 간의 사회적 연결을 얼마나 강화 시키는 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공공간은 단순히 ‘이용하라’고 명시적으로 초대 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환대받는다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암묵적 초대가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 세심한 설계는 아주 작은 요소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코펜하겐에서는 자전거 이용 시 교차로에 멈췄을 때, 내려서 기다릴 필요 없이 살짝 손을 얹을 수 있는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작은 디테일이 도시의 온도를 바꾸고, 사람들에게 ‘이 도시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디자인이야말로 사회적 참여를 이끌고, 회복력 있는 도시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또한 ‘참여형 프로그램’은 공공공간에서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는 단순히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뿐 아니라, 시민이 직접 공간을 돌보고 유지· 관리하는 자발적 참여 까지 포함합니다.
물리적 개입의 사례로는 공공 예술이 있습니다. 공공 예술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서는 활동량이 약 20%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유산을 넘어, 도시의 ‘살아 있는 유산’, 즉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공공 벤치를 배치하면 머무는 사람과 사회적 교류가 70% 이상 늘어난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조경은 이미 서울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조명은 낮과 밤, 계절과 시간을 불문하고 도시의 안전감과 환영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핵심 요소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사회적 인프라’입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기반시설을 넘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고 관계를 맺는 도시의 사회적 구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는 파악하고, 지도화하며, 평가하고, 설계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즉, 도시의 문화와 함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하는지를 지속적 으로 관찰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저희는 도시의 사회적 인프라를 설계할 때 허브(Hub), 헤이븐(Haven), 행아웃(Hangout) 이라는 세 가지 유형의 공간을 모두 아우르는 체계를 제안합니다.
그중 하나의 사례가 아부다비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아이들과 돌봄 종사자들이 보다 안전 하고 따뜻하게 머물 수 있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서울 역시 더 많은 가족과 아이들이 머물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면, 무엇보다 ‘아이와 가족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코펜하겐 역시 예전에는 놀이터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도시 전역에 다양한 놀이 공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일부는 시에서 파견된 관리자가 상주하며 아이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연령대별로 세심하게 설계할 때, 특히 어린이들의 활동 참여율이 크게 높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을 위한 제언
이제 서울에 대한 제 개인적인 제언을 드리며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저는 서울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약 12년 전 ‘세계 교통포럼’에서 서울시와 함께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도 멀리서 서울의 도시 정책과 디자인 시도를 지켜봐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드리는 말씀은 전문가의 평가라기보다, 도시디자이너로서의 진심 어린 제안으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서울은 이미 많은 것을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 더 ‘사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더 따뜻하고 세심한 디자인이 더해진다면, 서울은 분명 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할 것입니다.
서울에 드리는 제언을 네 가지 단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서울만의 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 세계가 모두 ‘코펜하겐화’될 필요는 없습니다. 각 도시의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서울 역시 고유한 도시 모델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지역 주민과 협력하며, 현재 서울의 공공 생활이 어떤 모습인지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도시를 이용하고 있는지, 어떤 계층이 도시의 활동에서 소외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러한 ‘도시의 지도화’가 이루어질 때, 시민들이 이 도시를 진정한 ‘나의 집’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정책과 제도적 기반을 점검해야 합니다.
현재 어떤 정책이 공공공간의 개발과 운영을 이끌고 있는지, 건축과 예술은 어떻게 도시 정책 속에 통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세요. 도시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이 사회적 영향과 연결될 수 있도록 재정비하는 것이 다음 단계가 될 것입니다.
셋째, 지역사회 참여와 데이터 기반 계획 수립입니다.
주민들과 함께 공공공간의 비전을 공유하고, 실제 데이터를 토대로 공공공간과 공공생활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계획은 단기적 실행안이 아니라, 향후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이어야 합니다.
넷째, 장기적 관점의 인프라 투자입니다.
많은 도시들이 연간 예산에 맞춰 단기 프로젝트를 반복하다 보니, 지속적인 발전의 기반을 놓치곤 합니다. 그러나 공공 인프라는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품격 있는 도시생활을 위한 필수 기반입니다. 서울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인프라를 설계하고 투자해 나간다면, 세계적 으로도 모범이 되는 도시 모델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소개하고 싶은 사례는 덴마크의 새로운 국가 건축정책입니다. 저는 지난 2년 동안 이 정책을 만드는 전문가 그룹에 함께 참여했고, 덴마크 문화부에서 주도해서 진행 했습니다. 제가 이 그룹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는데요, 2년 동안 이 문서를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 문서는 덴마크 문화부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아마 여러분도 거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정책은 도시계획과 조경, 그리고 건축을 하나의 새로운 정책 안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전체는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요. 첫 번째는 우리가 무언가를 확장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자연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서도 이 부분에서 이미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정책이 단순히 미적이거나 디자인적인 관점에서만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그 자연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놀이를 할 수도 있고, 사람들과 연결될 수도 있고, 또 쉬거나 머무를 수도 있는 그런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은 우리가 앞으로 훨씬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또 자원을 절약해야 합니다. 자원을 덜 사용하고, 재료의 활용을 최적화하고, 에너지를 줄이는 일들—이런 부분들은 이미 여러분이 하고 계신 부분이기도 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집단이나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을 위한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 도시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아래에는 몇 가지 가이드라인이 있습니다.
돌봄과 아름다움을 우선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모든 건축물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에도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단순히 철거하지 말고, 유지하고, 보수하고, 또 필요할 때는 변형하거나 새롭게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에는 너무 많은 오래된 건물들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환형 건축을 해야 합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연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도시 계획을 할 때 전체적으로 통합적인 접근을 강화해야 합니다. 또한 지역의 가치와 문화유산을 물리적인 형태로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유산으로서 지켜야 합니다.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포용 적인 형태의 건축을 만들어야 하고,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협력 체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함께 협력해야 하고, 부서 간의 경계를 넘어서 모든 프로젝트에서 이런 협력 그룹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이 순간을 꼭 포용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시점의 긴박함을 함께 느껴 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삶’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사람과 지구, 그 두 가지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 또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늘 새로운 것 만을 좇지 마시고, 우리가 가진 것의 가치를 되돌아보시길 바랍니다. 그 위에서 프로그램과 참여를 강화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연친화적이고 공정한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오래된 계획 모델에만 머물지 마시고,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모든 인프라, 도시 공간, 건축물 안에서 ‘순환’의 개념을 생각하시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협력하십시오.
우리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파트너십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실수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협력하고 함께 일할수록, 우리 도시계획과 디자인 커뮤니티는 더 빠르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이렇게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