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을 바꾼 '사회문제해결디자인' -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


한국은 스트레스 공화국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6 발표에 따르면 성인 90% 이상이 평소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서울서베이 2016 결과에서는 서울시민 53.5% 이상이 지난 2주간 스트레스를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현대인의 삶에서 스트레스는 점점 보편화되고 만성화되는데 이를 피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서울시는 이에 착안하여 2016년부터 사회문제해결디자인의 일환으로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을 기획하였다. 기존의 물리적 환경 개선과 물질적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들의 정신적 건강을 위한 새로운 공공정책을 시도했다. 시민의 정신 건강을 저해하는 요인을 디자인을 통해 개선함으로써 생애주기별, 상황별 직면하는 스트레스를 낮추고 개인과 사회의 건강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취지이다.


서울시는 첫 사업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10대부터 60대까지 스트레스 인지율을 조사했다. 가장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분석된 연령대는 뜻밖에도 10대 청소년이었다. 학업, 외모, 교우 관계, 가정환경 등 다양한 요인이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드러났다. 10대 시절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과도기적 특수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더 심각하게 체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과도한 학업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현상으로 여기거나,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오해하는 경우도 존재했다. 만약 이 시기에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는 방안을 학습하지 못한다면 다른 연령대보다 더 많은 부적응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기 스트레스를 자세히 파악하고 대처해야 성인기 정신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에 서울시는 10대들의 건강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스트레스 프리존(Stress Free Zone)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학교 내 방치된 교실을 활용하여 스트레스 진단 및 관리는 물론 명상, 음악 감상, 컬러 테라피 등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서울시는 2016년 '청소년편'을 시작으로 2017 '지하철이용자편', 2018 '청소년편'확산, 2019 '어르신편', 2020 '청년세대편' 등 매년 새로운 대상을 선정하고 맞춤형 스트레스 진단 관리 디자인 솔루션을 개발했다. 사회적 수요를 반영한 '공공디자인' 선진 사례로 평가받는 프로젝트 4개를 소개한다.



- 청소년을 위한 스트레스 프리 존 조성 / 신현중학교, 2016 (청소년편)


'청소년 건강에 대한 인식과 실태조사(2014)'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으로는 '참는다' (66%), '욕을 한다' (13%),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진다' (6%) 등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스트레스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해소하기 위한 디자인 솔루션이 시급했다. '청소년 스트레스 프리 존'은 자신의 스트레스와 우울을 스스로 진단하고, 결과에 따른 해소법을 익혀, 이를 실행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공간 프로그램을 말한다. 전교생 대상 설문조사와 학생, 교사, 학부모 인터뷰 등을 토대로 조사 및 분석 과정을 거친 솔루션이다. 





중랑구 신현중학교 스트레스 프리 존 조성 / 자료제공 : 서울시


신현중학교 스트레스 프리 존은 이용률이 적어 방치되었던 교실 2.5개를 합친 것과 같은 크기의 공간을 활용하였다. 진입로 정면에는 태블릿 단말기를 설치하여 자신의 스트레스 및 우울증 상태를 진단하고 결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스트레스의 개념과 관리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게 그림으로 구성한 '인포그래픽 게시판', 휴식과 테라피를 위한 '셀프 스트레스 프리 존', 소통과 놀이를 위한 '소셜 스트레스 프리 존'을 두어 크게 세 공간으로 구분하였다. 학생들은 알기 쉽게 정리한 게시판을 통해 중요 정보를 확인하고 진단 프로그램을 통해 스스로 스트레스를 진단할 수 있다. 진단 결과에 따라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실천할 수 있는 13가지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제시되고, 실제로 원하는 활동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한 것이다. 특히 동적인 활동을 위한 '소셜 스트레스 프리 존'은 따뜻한 난색 계열로 공간을 연출했다. 이는 좌뇌를 자극하여 지적 호기심을 높여주며 자존감이 낮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색채라고 한다. '셀프 스트레스 프리 존'은 녹색 계열의 색상을 사용했다. 고요하고 편안한 심리 상태를 만들어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 선택이었다.


디자인 효과성 평가 결과 (평가기관: (주)한국색채디자인개발원)

-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 능력을 의미하는 항스트레스 지수가 이용 전보다 좌뇌, 우뇌 각각 34%, 24%로 향상

- 일부 학생은 변화 정도가 100% 전후의 증가량을 보이는 등 항스트레스 지수가 크게 상승



- 청소년을 위한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 확산 적용 / 서울창신초 외 5개교 (청소년편)


이후 서울시의 사례에 주목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중랑구 신현중학교에 시범 조성했던 '청소년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을 6개 학교에 추가로 조성했다. 서울창신초, 성내중, 경복비즈니스고, 경일고, 미림여고, 서울영상고 등 초중고교와 일반고, 특성화고 등의 유형으로 확대되었다. 과도한 성적 부담과 경쟁 위주의 학습 환경으로 인해 높은 스트레스 인지율을 나타낸 10대 청소년들의 스트레스를 줄여 주기 위한 디자인으로, 그 효과성이 입증된 만큼 다양한 공간에 적용·발전시킨것이다.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 확산 적용 / 자료제공 :  서울시


특히 정적인 활동을 위한 '스트레스 프리 존'은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데 도움을 주는 녹색 계열 색상이 적용되어 차분함과 안정감을 선사한다. 휴식, 테라피 등을 위해 고요하고 평안한 심리상태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스트레스 자가 진단을 통한 결과 데이터에 따라 7가지 스트레스 해소 방안을 실천할 수 있다. 느긋하게 음악 감상, 색다른 컬러 테라피, 6분 독서하기, 하루 10분 꿀잠, 10분 집중 컬러링, 아로마 향 듬뿍 맞기, 15분 자기 성찰 글쓰기가 그것이다.


"낯설고, 차갑고, 갇혀 있는 공간으로 생각했던 학교가 이제는 편아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어요" 영상고 2학년 윤OO

"스트레스 프리 존은 10점 만점에 9점, 만점이 아닌 이유는 '왜 이제야 생겼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에요" 영상고 2학년 정OO


청소년 스트레스 프리 존 시범 운영 결과,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강서구 아동참여위원회 정책보고회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사업의 확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청소년 스트레스 프리 존은 학교가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을 위한 공간이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청소년이 직접 참여하여 그들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여 맞춤형으로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디자인 효과성 평가 결과 (평가기관: (사)대한트라우마협회)

- 스트레스 프리 존 체험 후 좌우뇌 항스트레스 지수 각각 13.7%, 13.6% 향상

- 정서지수는 4.5% 향상, 뇌기능지수는 9.9% 향상

- 심리적 스트레스 수준 27.5% 감소, 우울 척도는 27.3% 감소



- 지하철 이용자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솔루션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2017


지하철은 서울 시민들이 가장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그만큼 혼잡도가 높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곳으로 꼽힌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 북적이는 지하철역은 직장인들에게 스트레스 이중고를 안겨준다. 스트레스 없는 지하철역으로 변신한 첫 대상지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이다. 서울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지하철 이용자의 행태를 분석하고 여정별 스트레스 요인을 발굴하여 적합한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하였다. 혼잡한 출근길에도 이용객이 필요한 정보를 한눈에 찾을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 / 자료제공 : 서울시


우선, 공급자 중심으로 제공되는 지하철 역사 내 정보들을 이용자의 시각으로 접근하여 직관적으로 개선하였다. 1번 출구에서 개찰구를 향해 걸어가는 구간에는 바닥에 노란 스티커를 붙였다. 여기에는 '카드를 준비해주세요'라는 문구도 함께 담겼다. 출퇴근 시간마다 개찰구 앞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파악하고 대기시간을 줄이고자 마련한 디자인이다. 환승 역시 좀 더 빠르게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환승 구간 천장과 벽면에 각 노선 색을 활용한 화살표를 나타내고 주요 역명을 표기해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밖에도 이용자 스스로 질서를 유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승하차 대기 사인', '배려 존', '혼잡도 분산 사인' 등 다양한 디자인을 개발했다.



카툰 형식의 '에티캣과 모르쥐' 스토리 / 자료제공 : 서울시


2·4호선에서 5호선으로 향하는 곳에는 간단한 업무 및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스트레스 프리 존'을 설치했다. 지하철 내에서 잠시 쉬어 가거나 간단한 용무나 볼일을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용자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이 공간에서 이용자들은 핸드폰을 충전하거나, 조용하게 통화를 하고, 급한 업무를 처리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른 이용객의 민폐 행위로 인한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는 시민의식 캠페인도 함께 진행하였다. 간결한 네 컷 카툰 형식의 '에티캣과 모르쥐' 스토리 20종을 개발하여 역과 지하철 칸 내의 광고판과 85만 장에 이르는 1회 권 교통카드에 적용하였다.


디자인 효과성 평가 결과(평가기관: 홍익대학교 SDE lab.)

- 역사 내 헤매는 시간 및 사람 수 평균 65% 이상 감소 및 인지 속도 향상

- 사인 적용 후 올바른 대기자 수 평균 70% 이상 증가

- 스크린도어 앞 올바른 위치 대기자 수 평균 70% 이상 증가



- 어르신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솔루션 /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2019 (어르신편)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대인관계, 신체적 한계 등으로 우울 증상을 호소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노년기는 악회되는 우울 증상에도 불구하고 일상 속 스트레스를 표현하고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부족한 세대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우울증, 치매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에서 어르신들의 스트레스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정신건강상담 및 어르신 간 관계 형성을 위한 공간을 조성했다. 어르신들의 복지 서비스의 접점이며 70세 이상 노년층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여가 공간인 노인복지관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해소당 브랜드 및 스트레스 진단 매트릭스 / 자료제공 : 서울시


서울에서 어르신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노원구의 가장 오래된 복지관인 시립노원노인종합복지관 1층에 마련한 스트레스 프리존 '해소당'이 그 첫걸음이다. 해소당은 함께 모여(偕) 웃는(笑) 집(堂)을 뜻한다. 이를 통해 서로 간 거리감을 좁히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도록 유도했다. 해소당에서는 어르신들의 개인 성향을 진단 및 분석하여 결과에 따라 맞춤형 프로그램을 매칭한다. 이를 심리상담 서비스와 연계해 스트레스 관리법과 실천 가능한 해소 방안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어르신들의 스트레스 및 우울증을 줄이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어르신을 위한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 조성 / 자료제공 : 서울시
 

복지관 내 '스트레스 프리 존'은 기존 공간의 문제점과 이용 회원의 스트레스 요인들은 진단하여 새롭게 구성하였다. 누구나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마당'은 서로 마주 보는 구조를 통해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한 공간이다. 수경재배 기반의 물소리, 실내 공기의 질 개선 등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식물 테라피를 적용하였다. 복지관 서비스를 편리하게 상담받을 수 있는 '웰컴 라운지'는 어르신들이 복지관에 방문했을 때 환영과 대접을 받는 공간으로 인식되도록 접근성과 대화의 빈도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 밖에도 안정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전문 상담실 '마음 나눔 방', 책, 음악, 영상 등 지적 자극을 통해 스트레스 감소를 유도하는 '조용한 서재' 등의 환경을 구축했다. 또한 각각의 공간에는 산소 발생기, 백색소음, 식물재배 키트, 공간 색채조절 등 환경적 개선 요소를 적용하여 스트레스를 개선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해소당에서는 어르신들의 정서적,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 및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디자인 효과성 평가 결과 (평가기관: (사)대한트라우마협회)

- 뇌파검사 분석결과 자기조절지수(SRQ) 24.1%

- 항스트레스 지수 우뇌 8.5%향상 우울수준 34.8% 감소

- 스트레스 자각척도 36% 감소, 이용만족도 전·후 증가량 43.3% 향상


서울시는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 사업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처음 독립하는 청년 세대의 불안감 해소를 위한 디자인'을 개발 중이다. 청년주택 내 유휴공간을 활용해 거주자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커뮤니티 공간의 모델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물리적 공간과 연계하여 독립하는 과정이나 공동주택 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계약, 생활, 커뮤니티 매뉴얼 개발도 개발 중에 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한 시행착오는 필수적이다. 서울시가 제시한 디자인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함께 방안을 모색하고 참신한 생각들을 공유한다면, '스트레스 프리 디자인'에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디자인의 역할이 더 이상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거나 멋진 공간을 조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제해결을 견인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말한다. 최근 진행된 '살기 좋은 도시' 평가에서도 기존의 편의성과 쾌적성에 대한 항목뿐 아니라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시스템적, 정성적 지표들이 추가되기 시작했다. 복잡다단한 사회문제의 속성상 100%의 문제해결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비한 서울시는 또 다른 디자인 정책을 통해 다시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글 | 디자인프레스 정인호 기자(designpress2016@naver.com)


진행·편집 | 디자인프레스 권예랑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 서울시 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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