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경이 청소년의 건강한 정서를 만든다
우리의 일상을 바꾼 '사회문제해결디자인' -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
2011년부터 기획된 서울시의 사회문제해결디자인 사업은 그 효과가 증명되고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받으면 서 ‘정책 중심’의 디자인이 아니라 ‘인간 중심’ 디자인으로의 변화를 이루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청소년의 학 교폭력이나 정서적 불안, 디지털 의존성, 선후배를 포함한 교우관계 등을 디자인 솔루션으로 개선하고자 2014년부터 청소년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첫 시작은 학교폭력예방 디자인 사업으로 학교폭력을 일으키는 다양한 원인을 분석해 개선점을 찾아 나갔다. 2018년부터는 학교폭력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청소년 문제를 찾아 해결하기 위해 사업 명칭을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으로 변경하고 적용 영역을 확장해 가는 중이다. 특히, 최근 청소년 문제 행동이 질적인 측면에서 악화되고 그 유형과 대상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청소년의 발달단계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문제해결 솔루션이 다시금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청소년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 유형 중 대표적인 6가지 사례를 중점으로 서울시의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 사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관찰과 이해로부터 시작하는,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
언어폭력 / 긍정언어 말하기 유도와 즐거운 안심 통학로, '별빛으로; (2014)
2014년 첫 개선 사업은 은평구 충암중학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학교폭력의 시발점이자 피해 학생의 심리적 고통을 유발하는 언어폭력에 대한 예방과 개선이 시급했던 상황으로, 자신감이 결여되고 안정적인 지지가 부족했던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교내 방송반을 주축으로 한 긍정언어 말하기 유도 서비스인 ‘별톡별 서비스’를 고안했다. 교내와 등하굣길에 스피커, 전광판 등을 배치하고 별톡별 녹음실, 게시판을 신설해 언어를 통한 긍정 에너지를 순환시키고자 했다. ‘말하기-듣기-다시 말하기’의 활동을 반복하며 아이들 스스로가 언어폭력에 대해 자각하고 언어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 것이다.

시선이 닿지 않아 비행이 빈번이 일어나며 학교폭력이 발생하기 쉬웠던 후미진 골목에는 ‘별빛계곡’ 디자인을 적용하여 밝고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하고자 했다. 도보 위에 축광 안료를 활용한 디자인을 더해 어두워진 골목을 밝혔고, 고보조명을 통해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별빛 메시지를 전달하며 청소년의 취향에 맞는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

학교폭력 방관자 / 놀이를 통한 또래관계 확장. 'PLAY@방학' (2015)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은 이후의 사업을 통해 학교폭력의 원인을 보다 디테일하게 분석했다. 2015년에 전개한 방학중학교 사업의 경우, 사전 조사를 통해 재학생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로 방과 후 동네를 배회하는 일이 많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러나 지역 내 문화시설과 놀이시설이 부족해 학생 대부분이 방과 후 여가시간을 빈 공원에 혼자 앉아있거나 인터넷, SNS을 하며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에 공원에 거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던 ‘도깨비 연방’이라는 커뮤니티 주체를 주축으로 놀이문화를 활성화하여 학생들 간 친밀감과 공감대를 쌓게 하였다. 학교폭력 구조상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방관자 그룹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을 방관자가 아닌 행위자(방어자)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활동의 거점이 되어줄 ‘PLAY@박스’를 설치하고 ‘PLAY@공원’에는 놀이테이블, 벤치 등 공원 내 세부 시설물들도 새롭게 단장했다. 이외에도 학교 인근 통학로의 사각지대를 개선하였으며, 특히 다양성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발달장애 친구의 작품으로 꾸민 ‘PLAY@월’과 지역의 청소년 프로그램들을 소개하는 ‘PLAY@ 게시판’도 마련하였다. 사업 시행 이후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들의 두려움은 26.5% 감소하고, 주민 만족도도 최대 78.2%로 나타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보였다.
도봉구 방학중학교 'PLAY@방학' 프로젝트
배회 청소년 / 거리의 빈틈을 찾아 완성하는, '사이사이' (2016)
배명중학교가 위치한 송파구 삼전동은 각종 사건 사고의 발생 빈도가 높고 청소년 문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 족한 지역이었다. 학업과 관계 형성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 하며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이에 지역의 숨겨진 공간 곳곳을 밝게 비춰준다는 의미를 담은 사이사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건물의 사잇길을 활용하여 활동 테이블이나 건강 트랙, 문화 공간 등을 새롭게 조성하면서 지역, 세대, 교우 간 관계 개선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학생들이 두려움을 느끼던 장소들을 직접 찾아 ‘사각지대 숨은 그림 찾기’를 적용하여 지역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고 애착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두려운 선후배 간 관계 / 등하굣길을 새롭게 비추는, '영라이트' (2017)
거리가 인접해 있는 영화초등학교, 영등포중학교, 영등포고등학교의 경우 3개의 학교가 같은 통학로를 사용 했다. 소통이나 경험의 기회가 부족한 낮은 연령의 학생일수록 매일같이 통학로에서 마주치는 잘 알지 못하는 형 누나에 대한 두려움과 심리적 위축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동네 이미지로 인해 지역과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낮은 것 또한 주요한 문제였다.
이에 초, 중, 고 3개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며 아이디어를 내는 디자인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때 도출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학교 주변의 열악한 통로를 개선하는 ‘영라이트’ 프로젝트가 실시되었다. 서로 간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심리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것만으로도 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론인 '상상접촉(imagined contact)'를 기반으로 했다. 우선, 공간별 스토리텔링이 기반이 된 통학로 안내 사이니지, 거점 공간 등을 마련해 소속감과 긍정적 환경을 조성했다. 학교와 마을의 랜드마크가 되는 입체 벽화와 공간에 스토리텔링을 더한 예술작품도 설치해 세 학교 학생들이 학교와 지역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동작구 영화초, 영등포중, 영등포구 영라이트 프로젝트
제3의 공간 / 아이들을 위한 복합경험공간, '아이엠그라운드' (2017)
서울시는 학교폭력의 유형이 신체적 폭력보다는 정서적 폭력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광진구 용마초등학교는 뒷담화나 편만들기와 같은 행위로 발생하는 박탈감과 소외감 등의 정서적 폭력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그렇게 탄생한 ‘아이엠 그라운드’라는 커뮤니티 공간은 교내 창고를 리모델링한 곳으로 학생들을 위한 ‘제3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제3의 공간(the Great Good Place) :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올드버그의 이론으로 집과 직장, 또는 학교 이외의 공간에서 문화활동이 일어나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을 뜻한다.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새로운 상호작용을 만드는 장소로써 활용되고 있다.
맞벌이 가구의 아이들이 하교 후 갈 곳이 없어 배회하거나 다양한 사건사고에 노출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예술 창작 활동을 비롯한 야외 테라스에서의 다양한 액티비티 등을 경험하며 감각 발달을 도모할 수 있었다. 한편 서울시는 2018년 1월, 국내외 최초로 ‘서울시 사회문제해결 디자인 조례안’을 내놓았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디자인 조례는 다른 지자체에도 많이 있으나 범죄예방 디자인은 물론 치매나 고령화 대응 디자인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디자인 전반을 포괄하는 조례는 서울시가 최초였다.

디지털 과의존 / 식물을 이용한 쉼 공간 조성, '마음풀' (2018-2019)
이후 사업은 청소년들이 디지털이나 게임 등에 의존하는 추세에 주목하고 있다. 그중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과도 사용으로 인해 생기는 의존도와 금단 증상 등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시각 편향으로 인한 감각의 불균형이 아이들의 집중력과 정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서울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감의 균형을 되찾는 ‘바이오필리아’ 이론을 적용했다. 흙을 만지고, 관찰하고, 관리하는 식물 기르기와 관련된 일련의 프로세스를 통해 시각 이외에 후각, 청각, 촉각, 미각 등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음을 말하는 이론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과의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물에 대한 지식과 활동이 집약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들이 조성되었다. 동대문구 전일중학교의 ‘교실로 들어온 숲’, 금천구 동일여고의 ‘플레이 그라운드’, 도봉구 정의여고의 ‘플랜트 랩’ 등 교내 교실을 리모델링하여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한 ‘마음풀’ 프로젝트가 대대적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도봉구 정의여고는 식물을 직접 키우고 실험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표현과 정서 순화에 도움을 주도록 했다.

사실 학교는 학생들의 공간이지만 그동안 정작 학생들만을 위한 ‘진짜’ 공간은 없었다. 청소년 문제해결 디자인 사업이 제안한 다양한 커뮤니티나 마음풀 프로젝트는 전문가 집단의 참여로 단순히 만들어 놓는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무엇보다 커뮤니티 공간을 포함해 통학로, 식물 공간 등의 솔루션은 여러 차례의 학생 워크숍과 관계자 인터뷰를 통한 정확한 니즈를 반영한 것이어서 그 효율성은 훨씬 높게 나타났다. 마음풀 공간을 사용한 사용자의 경우, 76.4%가 이전과 비교해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마음풀이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고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답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