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살며 겪는 크고 작은 불편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그 문제를 겪는 시민이다. 공무원과 행정 전문가가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를 좁히려고 해도 타자로서 한계가 존재한다. 서울시는 2015년 시민들에게 공공의 문제를 직접 제보 받고 시민, 전문가, 기업 등 다양한 참여자로 구성된 팀이 직접 문제를 개선하는 공공디자인 사업 ‘디자인거버넌스’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업의 진행 과정 및 결과는 홈페이지에 공개돼 유연하게 확산되고 활용된다.


 

공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자유롭게 디자인거버넌스 공식 홈페이지(design.seoul.go.kr)을 통해 제안 가능하다. 현재까지 복지, 안전, 경제, 건강, 환경/위생 등의 분야에서 총 25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완료되었다.|자료제공 : 서울시


이번 6편에서는 지난 5편에 이어 디자인거버넌스의 주요 사례들을 소개한다. 서울랜드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지도를 배치하는 일부터 한강공원에서의 보행자와 자전거 간 충돌 위험 문제, 아파트의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하는 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목격되는 공공 문제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실현가능한 방안으로 해결, 완화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자.



디자인거버넌스, 어떻게 구성되나요?

OPEN : 디자인의 모든 과정을 시민들에게 개방합니다.

OPINION : 모든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합니다.

OPPORTUNITY : 모든 프로젝트에서 시민과 전문가에게 참여 기회를 제공합니다.

EFFICIENCY :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여 예산과 자원의 효율화를 추구합니다.

PUBLIC : 시민에게 결과를 공유하고 평가 받습니다.


점자지도디자인 - 서울랜드 (2015) / 서울어린이대공원 (2018)



저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입니다. 여느 또래들처럼 저도 놀이공원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정보가 없어 가족이나 친구에게 의존해야 합니다. 도움을 받지 않고도 놀이공원을 마음껏 즐기고 싶어요. 제안자 정예림



 

서울랜드 점자지도. 시각장애인은 이동 시 시계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 등 특정한 방식을 기준으로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복잡한 서울랜드의 구조를 오른쪽 손을 펼친 7개의 방향(손목, 손바닥 가운데, 엄지, 검지, 중지, 약지, 소지)을 기준으로 정해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자료제공 : 서울시, 사진 : 516스튜디오


국내 시각장애인들은 낯선 곳에 갈 때는 무엇이 있는지 미리 확인하기가 어려워 외부 활동을 계획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여가 생활이란 굳게 마음을 먹고 도전해야 하는 일이다.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이 부족하고 외출 시 동반자가 없을 경우 불편한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각장애인용 자료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는 어떨까? 도쿄와 홍콩 디즈니랜드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매우 상세하고 유익한 점자 가이드북을 제공한다. 특히 도쿄 디즈니랜드의 경우 점자 가이드북은 기본이고 장애 유형별 이용이 가능한 놀이시설과 조심할 점을 알려주는 인포메이션 북, 리조트 뉴스를 담은 점자 홍보물, 오디오북 CD가 하나의 패키지다. 게다가 점자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지도를 그려야 하는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감안해 방문 전 미리 받아볼 수 있는 우편 서비스도 제공한다.




 

서울랜드 점자지도와 점자 메뉴판. 저시력 장애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글자 스타일과 크기, 컬러를 사용했다|자료제공 : 서울시, 사진 : 516스튜디오


서울시는 2015년 서울랜드를 대상지로 선정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전체 지형과 함께 대표적인 놀이기구의 위치를 안내하는 기본적인 정보 외에, 안전상 이용이 어려운 기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벤치의 위치는 별도로 표시했다. 또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의 번거로움을 줄이기 위해 서울랜드 내 모든 식당의 점자 메뉴판과 시각장애인 응대 매뉴얼도 함께 개발했다.


서울랜드 점자지도 디자인의 노하우와 가이드를 기반으로 2018년도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위한 점자지도 프로젝트를 심화사업으로 추진하였다. 서울랜드 점자지도가 위치표시 및 놀이기구 정보안내에 중점을 두었다면, 어린이대공원 점자지도는 주요 방문객인 어린이의 특성을 고려하여 이용이 가능한 공간과 동물, 식물의 특성 등에 대한 이미지를 직접 만져보고 느낄 수 있도록 촉각지도로 제작하였다. 또한, 점자를 잘 모르는 시각장애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QR코드를 활용한 음성안내 지원 기능도 추가했다. 공원을 이용하고 난 후에도 기념품으로 간직하거나 학습용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구성에 신경을 썼다. 서울랜드와 서울어린이대공원의 두 가이드북은 현재 각 안내센터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점자지도. 공원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촉각지도, 경험카드를 제작해 시각장애인들이 공원에서 여러 즐길거리를 체험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자료제공 : 서울시, 사진 : 516스튜디오



한강공원 야간자전거 안전운행 유도 디자인 (2016)


저는 야간에 한강공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최근 고성능 자전거가 늘면서 공원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전거 이용자가 많아지고, 야간에는 시야 확보도 어려워 보행자와의 접촉 사고가 걱정이 됩니다. 실제로 사고를 목격한 적도 많고요. 제안자 최승현



자전거 보급이 늘어나면서 국내 자전거 사고 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야간 시간대의 사고 빈도수가 가장 늘었다. 프로젝트팀은 자전거 친화 국가인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분석하고 우리나라의 현장에 맞게 녹여낼 수 있도록 여의도와 반포 한강공원 일대의 현장을 답사를 실시했다. 프로젝트의 키워드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객 모두가 안전한 한강공원을 만들기 위한 안전 서비스를 도입했다. *'상호 간'이라는 뜻을 지닌 인터(Inter-)와 '활동적'이라는 뜻을 지닌 액티브(Active)의 합성어로 상호활동적인, 쌍방향을 의미한다.


 

사고 방지를 위해 보행자들이 안전한 횡단보도를 이용하고, 자전거 이용자(라이더)가 적정 속도 주행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을 활용한 안전 서비스. ‘괄호등’은 자전거가 다가오면 보행자에게 위험을 알리고, 보행자가 있을 경우 라이더에게 속도를 줄이도록 신호를 준다.|자료제공 : 서울시


2017년 1월부터 2년 동안 반포 한강공원 반포나들목 횡단보도에 설치되었던 ‘괄호등’과 ‘쉼표등’이 그 결과물. 괄호등은 자전거를 감지해 빛과 소리를 내 보행자에게 위험을 알리고, 쉼표등은 보행자를 감지해 횡단보도 50m, 20m 전부터 점멸하며 자전거가 속도를 낮추도록 유도한다. 무단횡단을 방지하고 안전한 횡단보도 이용을 이끄는 안전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횡단보도에서 이용자가 있음을 자전거 이용자에게 알려 감속을 유도하는 ‘쉼표등’(위). 야간에는 설치물에 환한 불이 들어와 자전거와 보행자 모두의 주의를 환기한다(아래).|자료제공 : 서울시 



이웃간 갈등 해소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2016, 2018)


공동주택에서 살 때 이웃이 내는 소음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소음 문제뿐만 아니라 담배연기, 주차문제 등 생활 속에서 겪는 말 못 할 문제도 많고요. 이웃과 서로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원만하게 해결하는 현명한 소통 방법이 있으면 좋겠어요. 제안자 심성은


 

이웃간 갈등 해소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개발 툴킷을 활용하는 모습|자료제공 : 서울시


서울시민의 60%가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가운데 층간 소음, 담배연기, 주차문제 등으로 인해 공동주택의 이웃간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웃갈등은 갈등이 발생한 이후에는 당사자들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므로 해결이 쉽지 않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시는 층간소음관리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주민들의 문제 해결 의지가 높은 서대문구 천연뜨란채 아파트를 시범지로 선택해 ‘토닥토닥 Talk Talk’라는 브랜딩의 이웃갈등해소 솔루션을 개발했다. 세대간 불만스럽거나 고마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순화된 방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갈등 예방 툴킷(Took-kit)’과, 이웃에게 미리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우편함 커뮤니케이션 카드’ 등이다.



 

이웃에게 미리 사정을 알리고 양해를 구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할 수 있도록 한 우편함 소통카드 12종 & 세대간 불만스럽거나 고마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순화된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갈등예방 툴킷 (2016)|자료제공 : 서울시, 사진 : 516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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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에도 설치해 주세요!”


 

2016년 천연뜨란채아파트에 정식 설치 후 서울시 내 임대아파트 2개 단지에서 간략 버전의 우편함 커뮤니케이션 카드가 응용되어 활용되었다. 주민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높은 활용도에 힘입어 2018년에는 디자인거버넌스 심화사업으로 백련산 힐스테이트 3차 아파트에 개선안이 적용되었다. 보다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한 ‘나눔 사물함’, 카드 사용방법을 직관적으로 개선한 ‘우편함 소통카드’ 등이 구체화되었고 이웃간의 문제를 공유하고 서로 피드백을 할 수 있는 ‘공유 게시판’이 추가 제작되었다. 그로 인해 주민들의 공동주택 생활에 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스스로 적극 참여하여 훈훈한 이웃 관계를 형성해 나감으로써 서로를 배려하는 일상을 지원하고 있다.





 

백련산 힐스테이트 3차 아파트에서 활용하는 모습. 2016년도에 개발한 12종의 우편함 소통카드의 활용도, 효과성 등을 고려하여 4종의 카드로 재구성한 사례 (2018)|자료제공 : 서울시, 사진 : 516스튜디오


글 | 디자인프레스 유제이 기자(designpress2016@naver.com)

진행·편집 | 디자인프레스 권예랑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 서울시 문화본부 디자인정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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