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경험을 특별하게 만드는 디자인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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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콘텐츠는 2021 서울디자인국제포럼에서 발제된 내용을 요약 및 편집하여 발표자의 사전 동의를 얻은 후 게재되었습니다.


발표자: 이혜영 (서울특별시 디자인정책과장)


안녕하세요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 이혜영입니다. 올해 포럼의 주제가 ‘리 커넥트, 가치창조자로서의 디자인’인데요, 오늘 저는 디자인의 가치를 다양한 시민들의 경험을 통해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험을 할 때 특별하다고 느끼시나요?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상황에서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두려움, 소외감, 무료함 등 부정적 경험들을 많이 겪게 되는 도시도 있고 안정되고, 재미있으며 존중 받는 느낌이 들게 하는 도시도 있을 텐데요, 도시는 그 도시 안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긍정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디자인이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서울시 사례를 통해 도시의 핵심 전략으로서 디자인의 가치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디자인은 안전이다. 

디자인이 왜 안전일까요? 도시는 원래 살던 동네처럼 편안함을 줘야합니다. 그렇다고 그 도시가 지루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에 산재해 있는 크고 작은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일상을 안전하게 지켜내는 것에 디자인이 해답을 주곤 합니다. 안전한 도시를 위해 범죄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요. 이를 위해 서울시는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생활안심디자인을 꾸준히 추진해왔습니다. 어두운 골목을 지날 때 느끼는 두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서울시에서는 자율방범대 통합초소를 두고, 문패와 우편함의 디자인을 정비했는데요, 이 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범죄율도 역시 감소하였구요. 서울은 지형 특성상 평지만큼이나 언덕에 위치한 주거지가 많은데요. 특히 어둡고 길이 복잡하면 넘어져 다칠 위험이 큽니다. 길게 이어진 계단 길에 조명, 안전 손잡이, 읽기 쉬운 지도를 적용해보았습니다. 중간에 쉬어 갈 수 있는 휴게 의자를 두어 어르신들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매일 이 길을 지나가는 주민들은 이전보다 안전하게 집으로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물건들이 질서 없이 쌓여 있고 보행을 방해하는 가판대 등으로 복잡한 시장에도 위험이 상존합니다. 꼭 필요한 시설은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저희는 시민들에게 깨끗하고 편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한편, 상인들이 비상시 안전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전통시장에 디자인을 입혔습니다. 우선 가판대와 보행로를 구분하는 시설물을 설치하여 보도를 정비하였습니다. 첫 번째 사진이 그 것인데요. 무거운 짐을 잠깐씩 올려 둘 수도 있습니다. 또한 주요시설에 대한 안내사인을 보기 쉽게 정리하고 비상시설은 눈에 띄도록 디자인해 혼란스러움을 줄였습니다. 최근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는 최대의 이슈는 감염병입니다. 공공장소에서 감염병에 대한 염려는 더욱 커지는데요. 공공화장실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출입문 스위치를 발로 누를 수 있도록 해 손으로 접촉 시 느끼는 불안함을 줄여주었습니다. 이는 감염의 염려를 줄여주는 것과 더불어 짐을 든 시민이나 어린이들의 접근성도 높여주는 디자인의 사례입니다. 도시가 지속가능하려면 안전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듯 디자인은 안전한 시스템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복지다. 

시민들에게 더 나은 생활환경을 제공하고,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디자인은 복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양한 글로벌 이슈 중 하나가 바로 고령화입니다. 한국은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사회 서비스 역시 확대되고 있습니다. 복지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집에서의 자립 지원은 더욱 중요합니다. 저희는 이 점에 주목해 집에서 주로 이용하는 침대와 소파를 새로 디자인해보았는데요, 신체 기능이 약화되어 어딘가를 잡고 움직이는 어르신의 특성을 반영해 집안에서 보다 활동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런 작지만 세심한 디자인이 바로 복지 아닐까요?


최근의 팬데믹은 안전만 위협하는 게 아닙니다. 많은 분들이 이전에 비해 가족,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것에 공감하실 텐데요. 특히 요양시설의 어르신들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가족과의 만남조차 요원합니다. 보고 계신 사진은 노인요양센터 내 면회실입니다. 저희는 올해 감염병 걱정 없는 비접촉 면회 공간을 디자인했습니다.  가족들이 만나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유대를 회복하는 특별한 경험을 드리기 위해서였죠. 다음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지도입니다. 누군가 도시가 장애인에게 불편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신체적 불편함이 장애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서울시는 시각장애인들도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경험을 누릴 수 있도록 서울어린이대공원 촉각지도를 개발했습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공간과 동물, 식물의 특성에 대한 정보가 담긴 점자 카드를 직접 만져보며 원하는 놀이를 계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디자인을 통한 자립 지원, 그것이 이들을 위한 복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외부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노동환경은 열악할 때가 많습니다. 넓은 야외 공간을 걸어서 이동하는 청소노동자를 위한 휴게 공간을 시범 도입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편히 휴식하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의미로 휴식충전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여러 사례를 통해 디자인은 사람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누구나 보편적으로 그 배려를 누릴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복지와 일맥상통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디자인은 문화다. 

디자인은 시각적 만족도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줍니다. 도시의 문화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것은 물론,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를 지원하는 것도 디자인의 영역입니다. 2019년에 ‘비밀의 문’을 주제로 전시한 조형물입니다. 당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제100회 전국체전이 열렸는데요, 잠실종합운동장을 찾는 방문객이 잘 접근하지 않던 녹지공간에 시각적인 재미를 더해 즐길거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렇게 디자인은 아무도 찾지 않던 공간을 문화 체험의 공간으로 바꾸기도 합니다. 디자인은 지루하기 마련인 곳에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관광을 할 때 목적지에서 머무는 시간만큼이나 기다리는 시간도 많습니다. 이에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색다른 경험과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시티투어버스 정류소와 매표소에 펀디자인을 적용했습니다. 미러 스테인리스를 통해 기다림의 공간이 시각적으로 즐거운 문화 공간으로 바뀐 사례입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인 한강에도 디자인을 접목해보았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한강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별 다른 준비 없이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의자 대여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습니다. 동시에 쓰레기 배출 시설물을 만들고, 눈에 띄는 디자인으로 시민 동선을 유도했습니다. 서울은 디자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도시 곳곳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한편, 문화 소비를 지원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에서의 일상이 곧 쉼이 되고, 시민들이 서울을 매력있는 문화도시로 느끼게 합니다.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디자인의 마지막 가치는 소통입니다.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디자이너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이기도 합니다.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특정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죠. 소통은 공감의 과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는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하철 에티켓에 재미있는 스토리를 입히고, 교통카드를 디자인했습니다. 무심코 하던 행동이 타인에게 불편을 초래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소통은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역 출입구로부터 1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는데요, 일상에서 10m는 줄자로 재지 않는 이상 모호한 개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스무 발자국’이라는 명확한 행동 지침을 디자인해 흡연자의 이해를 돕고 지하철 이용객의 간접흡연 피해를 경감시키기 위한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소통이란 일방적인 의사 전달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보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지하철역에서 볼 수 있는 안내사인을 볼까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안내가 복잡하고 헷갈리게 되어 있어 길을 잘못 든 경험은 상당히 흔한 일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곤 합니다. 따라서 이동경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이용객들이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소통’을 돕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디자인의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서울시의 사례를 통해 디자인이 어떻게 우리의 인식과 경험을 바꾸고, 이를 통해 어떤 일상의 가치들이 만들어지는지 소개해드렸는데요.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경험을 창의적으로 기획하는 일은 디자인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서울시정은 안전 건강 교통 교육 소통 등 다양한 영역이 있습니다.  디자인은 이러한 고유의 영역과 결합될 때  더 시민친화적이고 섬세한 서비스를 도출해 낼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 그 자체로서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시민 일상에 새로운 차원의 경험과 가치를 더할 수 있는 ‘가치창조자로서의 디자인'의 좀 더 확장된 역할을 기대하며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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